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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중독, 여행의 충동

[여행과 책] 오소희 작가의 남미 여행기를 읽고.

by 재기방랑 2013. 6. 6.

오소희 저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건 4월 초였다. 나는 그 때 중간고사를 맞이하여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서고로 들어갔다. 그 때 단번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신간도서 책장의 두 권.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책인지라 처음에는 시험 기간에 이런 책을 읽는 것은 학점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포기했다.하지만 결국 나는 쉬는 시간에 머리도 식힐 겸 읽으면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킨 뒤에 두 권을 모두 빌렸다. 겉 표지와 도입부만 조금 읽으려던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숨에 책장을 넘기며 그 자리에서 반 권을 읽어버렸다오소희 작가는 아들과 함께 우리에겐 다소 낯선 나라들을 중심으로 여행을 다닌다.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경험들을 전해주는 그녀의 책은 그토록 내가 찾아 헤매던 여행기였다. 작년 여름에 유럽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병적으로 여행을 그리워했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앞으로 나의 장래에 여행을 중요항목으로 꼽기도 했다. 입버릇처럼 한 번도 여행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여행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허한 마음을 달래고자 무수히 많은 여행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었다. 유랑에서 추천을 받아 읽어봤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심심한 문체. 때로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글들, 그리고 독자로서 공감하지 못할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정에 젖어 쓴 글 때문에 번번이 실망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찾은 여행기이다. 여행을 해본 자로서 공감할 수 있는 글귀와 엄마의 모성애가 느껴지는 사건이 녹아 든 경험담이어서 방대한 이야기를 지루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읽어나갔다. 특히나 내가 요즘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남미 여행기라서 더 집중해서 읽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다. 일단 아들과 둘이 선진국도 아니고 개발도상국을 서슴없이 여행한다는 모습 자체가 흥미롭지 않은가.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가슴이 철렁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 고비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나는 그 책을 계속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어린 자녀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부모를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나 역시 부모님 덕분에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또래에 비해 이른 나이부터 해외를 다녀보았다. 물론 지금 나의 이 병적인 여행앓이는 작년의 유럽여행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세계를 다녔던 기억 덕분에 낯선 곳,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미국을 처음 방문했던 때가 기억난다.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아무리 사진으로 미리 보고 갔지만 여전히 거대한 미국의 실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특히 애리조나 주에 있는 브라이스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 그랜드 캐니언 등은 자연이 신비함과 위대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실제로 경험해봤기 때문에 지금 내가 세계를 배경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나 역시도 내 아이를 낳는다면 그들처럼 세계를 보여주며 키우고 싶다. 언제나 큰 깨달음은 교과서가 아니라 세상 밖에 있으니까.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은 단 하나의 깨달음은 세상은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자라며 경쟁사회에 익숙해진 나는 무의식 중에 이 경쟁에서 도태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에 부응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불효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간의 여행은 나의 이십 년 인생의 관념을 뒤바꾸어 놓았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때문에 몇 점짜리 인생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 온 후에 나는 비로소 여유가 생겨났고 인생을 좀더 멀리서 바라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작은 일에 연연해 하며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였다. 인생을 조금만 더 여유롭게 살아가도 좋다. 이것이 여행 뒤에 바뀐 내 삶의 태도이다.